태양서 날아오는 유해입자 차단
땅에서 복사된 에너지는 흡수
자연·인간 지켜주는 보호막
“하늘 천(天) 따 지(地) 가물 현(玄) 누를 황(黃) 집 우(宇) 집 주(宙) 넓을 홍(洪) 거칠 황(荒).” 천자문의 첫 여덟 글자다. “천지는 가물고 누르며 우주는 넓고 거칠다”로 간단히 번역할 수 있을 텐데 ‘천지’와 ‘우주’를 구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천지’라는 말은 현대 과학이나 일상에서는 흔히 사용되진 않지만 ‘우주’는 ‘유니버스’나 ‘코스모스’ 번역어로 차용돼 현대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다음의 여덟 글자, 즉 “일월영측(日月盈측) 진수열장(辰宿列張)”을 보면 천지는 해와 달이 비추는 곳이요, 우주는 뭇별과 별자리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우주는 수많은 별과 행성들이 분포하는 시공간이라는 점에서 현대어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천지는 끝을 알 수 없고 황량한 우주라는 시공간 내, 생명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천자문은 천지간의 만물, 그리고 인간의 역사와 제도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천지는 지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천지’는 하늘과 땅으로 구성돼 있다. 하늘은 어디고 땅은 어디며 그 경계는 어디일까? 땅은 ‘누렇다’고 한 걸 보면 흙의 이미지가 분명하다. 하늘의 시작은 어디일까? 사실 쉬운 문제다. 땅이 끝나는 곳에서 하늘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땅끝’ 하면 땅끝마을 같은 바닷가를 연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발이 땅과 맞닿아 있는 바로 그곳이 땅의 끝이요, 하늘의 시작인 셈이다. 하늘을 보기 위해 꼭 위를 올려다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매일 숨 쉬는 공기 그것이 바로 하늘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천’은 대기를 의미한다. ‘하늘이 맑다’는 흔한 말을 통해서도 하늘은 대기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지는 대기권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지구며 단순히 지구라고 할 때보다 풍부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늘이 ‘가물다’고 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천자문 외울 때 익숙한 가물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현’은 보통은 ‘검다’는 의미다. 왜 하늘이 검다는 것일까? 하늘은 파란색이 아닌가? 그런데 밤하늘은 검고 파란 하늘은 맑은 낮 시간에 한정된다. 검다는 것은 단순히 밤하늘을 지칭한 것일까? 여기서 하늘의 색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자. 태양 빛이 대기를 통과할 때 기체 분자들과 부딪쳐 산란되는데 질소나 산소 등 대기의 99%를 차지하는 기체들은 파란색 빛을 주로 산란시키기 때문에 우리 눈에 하늘은 파란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붉은 노을은 태양이 저물면서 통과해야 할 대기층이 더 두꺼워져 초기에 산란해버린 파란색보다 붉은색 빛이 지표에 주로 도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파란 하늘과 붉은 노을은 대기가 태양 빛과 상호작용하면서 나타내는 다양한 측면인 셈이기에 하늘의 대표 색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현’은 단순히 검은색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현’은 ‘가물다’라는 말이 더 잘 표현하듯이, 변화무쌍해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신묘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대기란 것은 본래 무색투명한 것이 아닌가? 무색투명하지만 신묘하게 작동하면서 뭇 생명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 바로 대기인 것이다.
현대 과학은 ‘대기의 신묘한 작동’을 과거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실 ‘우주홍황’이 암시하듯 우주는 온도가 영하 270도에 달하며 생명에 유해한 입자와 전자기파가 날아다니는 황량한 곳이다. 남극의 황량함도 우주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황량한 우주와 지구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뭇 생명을 보호하고 길러내는 보호막이 바로 ‘천’, 즉 ‘대기’인 것이다. 대기는 태양에서 날아오는 온갖 유해 입자를 차단한다. 대기를 구성하는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 기체는 함량이 전체 대기의 0.04%밖에 되지 않지만, 땅에서 복사돼 나오는 에너지를 우주 공간에 방출되지 않도록 흡수함으로써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온도 범위를 유지시킨다. 생명은 먹지 않아도 십수 일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숨은 쉴 수 없으면 단 몇 분도 버티기 힘들다. 이와 같이 대기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천지’라는 말에는 지구의 총제적 작용에 대한 어떤 통찰이 담겨 있는 셈이다.
July 08, 2020 at 09:18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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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통찰 담은 천자문… 생명의 지구 '天地'- 황량한 공간 '宇宙' 구별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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