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한 인터뷰] ‘야구 밖 생활 5개월’ 정근우
바로 지도자 등 변신 가능했지만
사춘기 아이들 방향 잡아주기로
새벽 4시 일어나 딸 빙상장 데려가
야구선수 꿈인 아들과는 캐치볼
고교절친 추신수 제 역할 잘 할것
김성근 감독에 올 1월1일도 전화
향후 기명 칼럼·방송출연 등 계획
어느 순간 야구 DNA가 몸 이끌것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가 처음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른 큰 아들이 어색해 하는 모습을 보이자 아들을 위해 머리를 같이 짧게 깎은 정근우. 김양희 기자.
쉬는 동안 살이 제법 쪘다. 안 그래도 “개인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은퇴 뒤 야구가 없는 삶을 산 지 5개월 남짓. 정근우(39)는 지금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은퇴 때까지 ‘26년간’ 야구를 하면서 할 수 없던 일들을 하며 휴식을 즐기고 있다. 한 달 전에는 온 가족이 처음 모여 큰아들(재훈) 생일 파티를 했다. 선수 때는 늘 그 시기에 국외 전지훈련을 나가 챙겨주지를 못했다. 정근우는 “아이가 정말 좋아하더라”며 미소 지었다. 중학교 야구부원인 아들을 따라 쇼트커트까지 한 정근우를 최근 인천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 악마의 2루수 고교 2, 3학년 때 청소년대표를 했지만 키가 작다는 이유로 그는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고려대에 진학 뒤 “다시 도약해서 졸업 때 꼭 지명받겠다”는 마음으로 더 집중했다. 프로 입단 뒤 2006년 말 김성근 감독의 지휘 아래서 그는 일취월장했다. ‘에스케이 왕조’를 일구며 발군의 수비 실력으로 ‘악마의 2루수’로도 불렸다. 국가대표 2루수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세계야구클래식(WBC) 준우승,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2015 프리미어12 우승도 일궈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에 장사는 없었다. 정근우는 “어느 순간부터 공이 오면 불안해졌다. 바운드를 맞추는 능력도, 순발력도, 순간 대처능력도 떨어져서 ‘난 여기까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이뤘다. 선수 마지막 해를 2루수로 끝내서 좋았다”고 했다. 프로 16년 통산 타율 0.302, 121홈런 722타점 371도루. 2루수 부문 통산 타율·안타(1877개)·득점(1072개)·도루 모두 1위다. 에스케이, 한화, 그리고 엘지까지 여러 팀을 오가며 후회는 없을까. 그는 “한 팀에만 계속 있으면 한 야구 스타일만 알게 된다. 다른 팀에 가면 다른 스타일의 야구를 경험하게 되는데 열심히 배우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그는 첫 자유계약(FA) 신분(2014년 말)일 때 한화 이적을 결심한 새벽, 아내와 함께 펑펑 울었다. 평생 팀이라 생각했던 에스케이와 협상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다. 정근우는 “이미 지난 일이다. 그 당시 선택이 나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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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품격 선수 시절 그는 줄곧 주장을 했다. 아마추어 때도, 프로 선수 때도, 국가대표 때도 더그아웃 리더를 했다. 정근우는 “파이팅 넘치는 성격이라서 시켰던 것 같다”면서 “운동장 땅 고르기 같은 것을 할 때 나서서 하고 있으면 다른 이들도 따라 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식이었는데 경기 때 1루까지 전력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후배들도 저절로 따라 했다”고 밝혔다. 야구 인생 최고의 순간은 그가 주장으로 참가했던 2015 프리미어12 우승 때다. 최고참으로 대표팀 경기에 나간 것이 처음이기도 했다. 정근우는 “대표팀 주장을 맡으면서 선수들과 잘 소통하고 어떻게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려고 했었다. 마지막 태극 마크이기도 해서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앞서 2000년 에드먼턴 세계청소년야구대회 대표팀 주장도 했었다. 당시 청소년대표팀에는 정근우를 비롯해 추신수(SSG), 이대호(롯데), 김태균, 이동현, 정상호(이상 은퇴) 등이 있었다. 정근우는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는데 주장인 내가 먼저 움직이니 남도 따라 움직였다. 주장을 하면서 상처받지 않게 팀을 이끄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돌아봤다. ■
인생의 스승 정근우는 김성근 전 감독(현 소프트뱅크 호크스 코치고문)에 대해 “인생을 가르쳐 준 분”이라고 표현한다. 정근우의 김 전 감독에 대한 예의는 새해 인사로 증명된다. 그는 매해 1월1일 자정에 김성근 전 감독에게 전화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한다. 하와이 전지훈련을 갔을 때도 시차를 계산해 전화했다. 정근우는 “올해는 어쩌다 보니 40분 늦게 전화를 했는데 안 받으셨다. 다음날 감독님이 ‘12시20분까지 기다렸는데 전화 안 와서 잤다’고 타박(?)하셨다”며 웃었다. 김 전 감독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사실. 정근우는 “감독님 밑에 있으면 훈련 등 힘든 것은 맞다. 하지만 감독님은 선수 가족까지 일일이 신경 써 주시는 분이었다”며 “지나고 나면 ‘진짜 그런 분 없다’고 느낀다”고 했다. 김성근 전 감독 밑에서 훈련하고 경기하면서 전우애 비슷한 감정이 생긴 에스케이(현 SSG) 선수들과는 지금도 잘 지낸다. 에스케이 야구단이 매각돼 “본가가 없어진 느낌”도 든다. 정근우는 “에스케이 소속일 때 여러 가지 일도 많았고 이룬 것도 많았다. 젊은 시절 열정을 쏟아냈던 팀인데 그런 팀이 없어진다니 뭔가 마음 한구석이 사라진 듯하다”고 했다. 부산고 절친인 추신수에 대해서는 “(추)신수는 고교 때도 본인이 맡은 역할을 잘 해내면서 먼저 솔선수범하는 친구였다. 신수에게는 ‘메이저리그 환경과는 다르지만 거기에서 했던 대로 열심히 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말해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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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무게 은퇴 뒤 바로 지도자 변신 등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길을 택했다. 정근우는 “아이들 사춘기도 오고 지금은 부모로서, 아빠로서의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짐도 많이 덜어줄 수 있다”면서 “지금 이 시기에 좋은 방향으로 틀만 잡아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그는 요즘 새벽 4시에 일어나 피겨 선수가 꿈인 막내 수빈이를 과천빙상장에 데려다주고 야구 선수가 꿈인 재훈이를 위해서는 오후에 캐치볼 등을 함께 해준다. 정근우는 “학부모 역할을 제대로 해보니 재밌기도 하다. 아이들과 대화가 늘어 더 많이 친해졌는데 없던 잔소리가 늘어난 것은 단점”이라고 했다. 그는 잠시 미래에 대한 고민은 접어뒀다. 기명 칼럼을 쓰고, 방송 출연 등에 대한 계획은 있으나 딱히 붙박이로 하고 싶은 일을 정하지 못했다. 당장은 테니스, 골프 등 야구를 하면서 못 했던 것을 하고 싶다. 정근우는 “지금은 아무런 고민도 없다”면서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몸이 반응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순간 야구 디엔에이(DNA)가 나를 또 어딘가로 이끌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KBO리그 역대 최고 2루수의 오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인천/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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