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지나요? 제갈량도 만두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정도 밖에 못 했는데요? 만두는 제갈량의 남만정벌에서 유래합니다(중국에서는 소를 넣지 않고 찐 떡을 ‘만두’라고 한다고 하니 우리가 알고 있는 만두는 소가 들어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교자’와 비슷합니다).
위와의 싸움을 앞두고 배후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제갈량은 남만을 정벌하기 위하여 출정하고,
맹획을 일곱 번 사로 잡아 일곱 번 놓아 준 후에야 맹획의 진심 어린 항복을 받아 내며 정벌의 목적을 달성한 제갈량은 돌아 오는 길에 노수에 이르게 됩니다.
남만 정벌 과정에서 수 많은 남만의 군사들이 죽어 그 한 때문에 노수가 화가 나 심한 풍랑이 일어 노수를 건널 수 없다고 생각한 제갈량이 진짜 사람의 머리 대신 만인의 머리 모양을(만두) 빚어 수신께 제사 지내는 것으로 그 혼을 달래자 노수가 잠잠해져 노수를 건널 수 있었다는 내용인데요.
촉의 승상이었던 제갈량이 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 부득이 남만을 정벌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으니 그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을 겁니다(희생된 생명을 되돌릴 수 없으니 만두로라도 영혼들을 달래고자 한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죄책감에 사로 잡힌 자신을 위로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최근 내가 책임지겠노라고 장담하며 구급차를 세웠다가 환자가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더 자세한 사실관계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테지만).
그런데 과연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요?
단언컨대 그 어떤 누구도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비가역적인 생명이 희생된 후 신이 아닌 다음에야 무슨 수로 희생된 생명을 되살릴 수 있을까요?
고작해야 행위자에게 닥친 형사책임이나 민사책임 정도를 지는 것인데 이것은 자신에게 닥친 형벌이나 손해배상책임을 감수하겠다는 것이지 희생된 생명 자체를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니 ‘생명에 대한 책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생명에 대한 책임은 아니겠지만 그렇다면 행위자는 어떤 책임을 지게 될까요?
(지면 사정상 형사책임에 관해서만 적습니다, 민사책임의 경우에는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한 행위면 족하므로 크게 문제될 부분이 없고 인과관계의 문제 역시 형사책임에서의 인과관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형사책임에 있어서는 일견하기에 살인죄와 과실치사죄가 우선 떠오르고 구체적으로는 미필적 고의와 인과관계의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① 미필적 고의(이전에 조조에게 관우의 머리를 보낸 손권의 행위와 관련해 한 번 살펴 본 적이 있습니다)가 인정된다면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과실치사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환자가 사망하면 내가 책임지겠다’는 취지의 얘기는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는 근거일까요, 아니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지 않는 근거일까요?
보기에 따라 i) 앞서 적은 것처럼 책임질 수도 없는 일을 책임지겠다고 한 것이니 반증적으로 행위자는 ‘환자의 사망’이라는 결과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위 표현은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지 않을 근거가 될 것이고 ii) 반면에 환자의 사망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책임지겠다’는 표현으로 그 결과를 용인(또는 감수)하려는 의사도 있다고 보아 위 표현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위와 같은 미필적 고의의 문제 외에 ‘사실의 착오’ 문제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이 부분은 후술하겠습니다.)
② 인과관계와 관련하여서는 ‘행위자가 구급차를 세우지 않았으면 환자는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결론이 가능하여야 행위자에게 ‘환자의 사망’이라는 결론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이 부분은 당시 환자의 상태, 행위자로 인해 소비된 시간이 환자의 상태에 끼친 영향 등에 관하여 의학적 지식을 가진 분들이 판단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실행의 착수가(환자가 있는 구급차를 세운 행위) 있은 이후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미수범이 문제될 수 있는데,
‘미필적 고의 인정 & 인과관계 인정’의 입장에서는 위 행위가 살인죄의 기수범으로,
‘미필적 고의 인정 & 인과관계 부정’의 입장에서는 위 행위가 살인죄의 미수범으로,
‘미필적 고의 부정’의 입장에서는 위 행위가 과실범의 미수범이므로 무죄로 결론날 것입니다.
③ 그런데 여기서 행위자는 ‘환자가 진짜 있을 줄은 몰랐다’라거나 ‘내가 응급차를 세운 행동 때문에 환자가 사망할 줄은 몰랐다’라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환자가 진짜 있을 줄은 몰랐다’는 부분은 사실의 착오에 해당합니다.
행위자가 행위 당시 ‘구급차에 환자가 타고 있지 않다’는 확신으로 인한 사실의 착오에 빠져 있었다면 고의의 요소인 행위의 대상에 관한 인식이 없어 처음부터 ‘과실치사’만이 문제가 될 뿐 ‘살인죄’가 문제될 수는 없습니다만,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은 행위자의 내적 사실에 관한 문제이므로 당시 행위자가 구급차를 세우면서 했던 행동이나 말 등을 바탕으로 착오의 존재 여부에 관해 추론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내가 응급차를 세운 행동 때문에 환자가 사망할 줄은 몰랐다’는 부분은 인과관계의 착오로 볼 수 있습니다.
인과관계의 착오는 그 착오가 본질적이지 않다면 인과관계의 귀결에 별 다른 영향이 없는데 이 경우에서도 특별히 본질적인 인과관계의 착오는 보이지 않습니다.
필자 역시 이 사건에 관해 ‘구급차에 정말 환자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했을까?’, ‘구급차를 세워 지연된 시간 때문에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면 정말 그렇게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확률적으로 보아도 구급차에 응급환자가 탄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응급환자를 후송하는 시간이 지연되면 그 지연된 시간 만큼 환자의 생명에 위험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어 행위자의 진심이 궁금합니다.
수사 결과와 법원의 판단을 지켜 보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화가 난다고 해서 타인의 생명에 직접적인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행동 만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겠죠, 타인을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어떤 누구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이미 침해된 생명에 대해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July 11, 2020 at 06:3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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